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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3-10 13:24
가정폭력 피해 캄보디아 결혼이주여성의 사건을 바라보는
 글쓴이 : 수원YWCA
조회 : 14,768  
가정폭력 피해 캄보디아 결혼이주여성의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 

한국에는 현재 15만명을 헤아리는 결혼이주여성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만 그 중 상당수의 결혼이주여성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은 물리적 폭력과 심리적 위협, 언어폭력, 알코올 중독에 의한 괴롭힘, 내쫒김, 방임 등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한 캄보디아 결혼이주여성의 불행한 사건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09년 1월31일 새벽, 대구에 사는 캄보디아 여성 츠호은릉엥씨(이하 초은이라고 부름)가 가정폭력으로 시달려 오던 중, 우발적으로 남편에게 칼로 상해를 입혔고, 남편은 곧 병원으로 옮겼으나 2월3일 잠시 의식을 회복했다가 2월4일에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저희는 이 사건을 접하며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공포심에 저지른 한 순간의 실수로 남편을 살해했다는 평생 씻을 수 없는 낙인을 안고 살아야 할 초은씨가 가엽고, 다른 한편으로 한 여성의 남편으로 평안한 생을 마감하지 못한 남편의 어이없는 죽음이 안타깝습니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20살 연상의 남편과 살아가는 것이 힘겨웠을 것입니다. 더욱이 초은씨의 남편은 자주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임신까지 한 상태였기에 그 어려움은 상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초은 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자 애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선생님, 그녀와 함께 공부를 했던 친구들은 그녀가 매우 성실했고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으며 남편과 시어머니에게도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였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초은 씨는 한국어교실에 다니면서 만나는 친구들, 또 한국 사람들에게도 남편의 나쁜 점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려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이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잘 대해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자랑하고, 칭찬하였습니다. 한국생활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법도 하지만 그것에 대해 불평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녀와 친했던 캄보디아 친구는 초은 씨가 가끔이긴 하지만 남편이 나를 때린다, 술을 너무 자주 많이 마신다, 남편이 술을 마시면 너무 무서운 사람이 된다고 말하였다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은 더욱 안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일부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은 남편의 폭력 정도가 얼마나 심했냐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폭력의 강도는 외부에서 측정하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만난 수많은 이주여성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몽둥이로 때려야만 폭력이 아니라고,  팔 다리가 부러져야만 내가 폭력을 당했다고 믿어주겠냐고 말입니다. 아내를 향해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양 마음대로 다루려 하고 쫓아내겠다, 너희 나라로 돌려보내겠다고 윽박지르며, 가난한 나라에서 돈 때문에 왔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내해야 하는 모멸감, 게다가 앞으로는 남편의 이런 태도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는 공포, 내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누구도 내 편이 되어줄 수 없으리라는 심리적 고립감 등 이 모든 것이 이주여성에게는 심각한 무형적 폭력으로 다가옵니다.
초은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이제 겨우 18살인 미성년자로서 민감한 임신 3개월 중에 있었습니다. 언어로 완벽한 소통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20살 연상의 남편이 언제나 술을 마시고 자신을 향해 쏟아내는 분노는 매우 위협적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사건 당일도 이미 이제까지 지내온 남편의 태도에 미루어 자신과 뱃속의 아이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극심한 폭력의 공포 앞에서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칼을 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약 그것이 이렇게도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할지라도 결코 칼을 드는 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이주여성에게 가하고 있는 폭력의 실체를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부부간에 일어나는 폭력의 범위를 외상이 드러나고 증거가 있는 물리적 폭력에 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결혼 가정에 있어서는 물리적 폭력의 심각성과 더불어 그보다 많은 여성들이 심적이고 무형적인 폭력의 공포 앞에서 떨며 지내는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사회는 외상적 폭력의 상처가 없는 그녀들의 호소에는 귀기울이거나 그녀들을 위한 인권적 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폭력에 대한 안일한 사고, 협소한 인식, 부부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사회의 인식부족과 책임성 부족이 바로 오늘과 같은 이런 비참한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초은씨의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는 작년 <사건 2007노425> 후안마이 사건 항소심 판결문의 정신이 오늘 이 사건에서도 헤아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일 뿐이다. 노총각들의 결혼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는 남녀를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

이번 사건의 피의자인 초은 씨는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가정폭력의 피해자입니다. 그녀는 또한 가정 내에서뿐만 아니라 결혼중개업체의 알선에 의한 국제결혼이라는 기형적 혼인방식이 낳은, 가정을 이루는 것 외에는 잔인하리만큼 결혼이주여성에게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한국사회에 의해 상처입은 피해자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법정에서 선고하는 형벌보다 더한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남아있는 일평생을 살아야 하는 마음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행위에 따른 법정의 유형적 형벌이 아니라 그녀에게 남겨진 생명과 더불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베풀어 주는 것이 피해자요 가해자로 초은을 내몰았던 이 사회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온정이자 책임일 것입니다.

2009년 3월 5일

가정폭력 피해 캄보디아 이주여성 구명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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